소련과 미국이라는 거대한 두 축이 평화의 분위기를 타는 데탕트 시대가 이르러서야 화해의 장에 발을 들여놓을 수 있었다. 독일의 경우는 1980년대 말 동독을 지탱해 주고 있던 구 소련이 몰락하자 서독이 동독을 흡수통일 했다. 한국의 경우 북한이 남한에 흡수통일 되지 않았지만 남북합의서를 체결
소련의 안보에 극히 중요한 지역으로 간주했기 때문에 그 지역의 어떤 나라가 서방진영과 경제적, 군사적 동맹관계에 들어가는 것을 용납하지 않으려고 했다. 그리하여 1940년대 말에 이르러서는, 그는 정치적 숙청 등을 통하여 자 신이 고른 지도자들을 권좌에 앉혔고, 후에 바르샤바조약기
제주폭동 사건을 비롯해 1948년 여수∙순천반란사건을 일으켰다. 그러나 그것은 실패했고, 그 이후 1949년 유격투쟁전략을 시도했으나 이것도 무위로 끝났다. 결국, 1950년 봄까지 남한에 대한 해방과 혁명 전략의 기반을 완전히 잃게 되었다. 이처럼 자신들의 목표달성이 어렵다는 것을 감지한 김일성
무너졌고, 이 사건이 있은 후 11개월 후인 1990년 10월 3일 독일은 통일이 되었다. 베를린 장벽 붕괴는 유럽 전체에 지각변동을 일으켜 동유럽 각국의 민주화를 거쳐 1991년 구소련의 해체로 정점에 도달했다. 우리나라는 분단국가로서 독일의 통일 과정을 참고하여 교훈을 얻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전쟁과 미 ․ 소 긴장완화(1964-1968)
ⅰ. 베트남전쟁의 악화
베트남 전쟁은 존슨으로부터 모든 힘과 야망과 명성을 앗아가 버린 숙명적인 사건이었다. 그 당시 대부분의 미국인들과 마찬가지로 냉전적 사고에 집착해 있던 존슨은 ‘나는 중국이 넘어갔던 식으로 동남아시아가 공산주의로 넘어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더욱 문제는 문민정부를 거쳐 국민의 정부에 이르기까지 민주화가 진전된 오늘날에도 반공주의라는 냉전의식이 여전히 지배적이라는 것이다. 서해안에서 교전이 벌어졌다는 뉴스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리가 이겼나 얼마나 적을 때려부수었는가가 첫 번째 관심이
진영이 개입하여 대리전 형식의 열전이 전개되는 유형을 띠었다.
Ⅱ. 냉전의 개념
1. 냉전(Cold War)이란
전쟁행위가 없이 경제, 군사, 심리적인 동원이 필요한 위기이다.
2. 냉전체제의 대두
⑴ 2차 대전 후 유럽주도의 질서가 붕괴 : 미국과 소련이 초강대국으로 부상하여 세계패권을 겨루는 새
이후 국제 질서
2차 세계 대전 이후 미국은 전쟁에서의 승리와 안정된 기반으로 세계의 패권을 거머쥐게 된다. 미국은 소련을 비롯한 공산권에 대응하기 위해 브레튼 우즈 체제로 경제적 기반을 확고히 하고 마샬플랜을 실행함으로써 유럽과의 우방 관계를 돈독히 함은 물론 군사력을 강대하
2차 세계대전 패전 후, 독일은 서쪽의 서방 연합국 점령지와 동쪽의 소련 점령지로 나뉘었다. 이처럼 처음의 탈나치화는 나치 범죄에 대한 보응으로서 타인에 의해 시작 되었으며, 조금 후에는 점령군의 지휘 아래 독일인에 의해 시행 되었고, 동독과 서독으로 나뉜 후에는 공산주의 체제와 민주주의 체
자유무역 견해를 키웠으며, 미국의 잉여 농산물 및 공산품을 위한 판로를 창출하기 위해서 뿐만 아니라 서유럽 국가들의 경제성장을 촉진시키고, 그들의 경제를 재건할 수 있는 수단으로서 서유럽 국가들의 수출 능력을 보장해주기 위해서 무역 장벽을 없애려고 노력했다. 무역장벽의 감축은 미국 내